지난 주 현지에서는 2박 3일, 막상 집에서 따져 보면 4박 5일같은 출장을 다녀오고 나니 음....정말 지금까지는 이만큼 오랫동안 집을 비운 적이 없었는데 집에 오니 아이가 한뼘 쑤욱 큰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뭔가 귀욤귀욤한 느낌이 다른 느낌으로 훌쩍 달라진 듯한 느낌이랄까...약간 위화감이 있었는데, 아내는 사실 이런 점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역시 매일 같이 있으면 변화를 알기 어려운가 봅니다.

이제 7개월이 절반쯤 지나가고, 처음 갔던 대형마트 문화센터도 슬슬 첫 클래스의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만큼 이제 외출이나 대외활동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것이죠. 그리고 아내의 말로는, 문화센터에서 이 아이는 나름 좋은 대외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대부분의 클래스에서 그 흔한 칭얼거림도 없이 햇님웃음으로 즐기고 오니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클래스의 다른 어머니들에게 저희 아이는 말 그대로 '순둥이 귀염둥이' 로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그냥 마냥 순둥이 귀염둥이였으면 저희도 참 좋겠습니다만....이 아이, 집 안과 밖에서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안에서도 먹을 때 빼고는 기본적으로 너그럽고 느긋하지만 나름 자기 주장 확실한 녀석입니다. 저희 부부는 음...그래도 아이가 이런 적당히 느긋한 성격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로 역시 초반에 애착형성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역시 핵심은, 이 시리즈의 처음을 장식했던 과감한(?) 아빠의 육아휴직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1. 저희 아이는 밖에 나가면 나름대로 순둥이, 귀염둥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두어달 전에 앉지도 못하는 아이가 문화센터를 처음 가서 투정부리는 아이들 속에서 햇님웃음 지으면서 수업을 만끽하고 온 다음부터 꾸준히 그런 대외적 이미지(?)를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가 뭐 밖에서 얌전하게 하려고 딱히 노력한 건 아닌 거 같고, 느긋하지만 탐구 좋아하고 호기심천국인 아이의 성격이 외출의 즐거움과 잘 맞았겠거니 싶습니다. 

아내가 문화센터의 다른 어머니들과 이야기한 바로는 음...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 문화센터에 차를 타고 편하게 오는 아이가 이 클래스에서 저희 아이 정도라고 하네요. 물론 집이 애매하게 거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언제나 탈 수 있는 차가 있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큰 이유는 아이가 별 말 없이 즐겁게 잘 타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머니들이 힘겹게 아기띠를 메고 버스를 타고 오는 이유는, 바로 아이가 유모차와 카시트를 타기만 하면 참 싫어해서라고 듣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희 아이는 유모차, 카시트를 태우면서 딱히 적응 같은 것에 고생한 적이 없습니다. 유모차는 음...사실 새 유모차를 처음 탈 때는 제가 아이라고 해도 냄새 때문에 조금 싫었을 수도 있겠고 실제로 조금 싫어하긴 했습니다만, 다음에 탈 때는 냄새도 빠지고, 밖에 나가서 움직인다는 즐거움이 더 커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참 좋아라 하고 타고 있습니다. 카시트도 처음에 탈 땐 조금 칭얼대는 것 같더니, 지금은 참 편안하게 타고 다닙니다. 심지어는 엄마가 안 보여도 조용히 창밖을 구경하면서 잘 지낼 정도입니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있어 참으로 어렵다는 이 유모차와 카시트 미션을 쉽게 넘기고 나니, 밖에서는 정말 세상 편한 성격의 귀염둥이 순둥이로 보이는 듯 합니다. 덕분에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하루에 두어번씩은 아이가 귀엽다는 코멘트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엄마들의 로망이라는 '귀염둥이 순둥이' 라는 이미지는 밖에서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고 하니 보는 사람들에게 잘 웃어주고 해서 더 그런가 싶습니다. 뭐 아이가 순둥순둥하고 귀여우면 좋은 일이죠.


2. 하지만 집 안에서는 음...마냥 귀염둥이 순둥이라고만 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여전히 별로 가리는 거 없고 느긋하고 관대하지만, 나름대로 취향과 요구도 확실합니다. 오죽했으면 아이가 칭얼거리는 톤으로 이런 요구를 구분하다 보니, 말 못하는 아이가 말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요즘에는 이 칭얼거림의 신호가 좀 복잡해졌는데, 살면서 필요한 요구가 더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요구가 한꺼번에 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점은 마냥 순둥이라고 선택장애로 더 난감하게 칭얼거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 아이를 밖에서만 보던 분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반응이지만, 백조나 오리가 물 밑에서 발차기 하는 것처럼, 이 아이도 집 안에서는 순둥이 타이틀을 떼고 장난꾸러기로만 남습니다. 평소에도 기저귀 갈 고 옷 갈아입을 때, 곱게 잘 누워있으면 좋으련만 뒤집기 이후에는 정말 쉴새없이 발차기하고 뒤집기해서 작업을 방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뭐 이정도는 제가 정말 피곤하거나 하지 않으면 이제 너무 익숙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짜증같은 것도 올라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물론 응가기저귀 갈때 이러면 작업 난이도가 조금 올라가지만 말이죠.

어느 문화센터 가던 날은, 외출을 위해 옷을 입고 양말을 신기는데 아이가 이 양말이 갑자기 어색했나 봅니다. 갑자기 양말신던 발을 정말 빛의 속도로 수십 회 버둥버둥하면서 방해를 합니다. 아마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으앙 이게 뭐야 내발에 지금 뭐하는 거에요 이런 껍질 저리 치워요 뿌엥~' 이라고 했지 않겠나 상상해 봅니다. 물론 기저귀 갈 때나 옷 갈아입을때 정도의 연장선상이라 봐서 별 탈 없이 그냥 신기고 가긴 했습니다만...아이도 딱히 양말이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다 신고 나니 잘 지내더군요. 이럴 땐 양말 신기던 엄마만 멘탈에 흠집이 납니다....

이렇게 어렵게 신긴 양말이거늘...집에 올 때쯤 아파트 올라오는데 청소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어머 아가 양말 하나는 어디다가 두고 왔니?' 라고 말을 겁니다. 그 때서야 뜨악 하죠. 어머 양말 한짝이 어디로 갔담....당연히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죠. 아마 지금 추측에는 차 안 어디선가 돌아다니고 있으면 다행이겠다는 행복회로가 열심히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 타고 나갈 때마다 찾아본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이런 이야기를 밖에서 하면 아이는 '어머 내가 언제 그랬어요' 라는 듯이 반짝반짝 방글방글하게 주위를 보고 있으니, 다른 분들은 '어머 이런 순둥이 귀염둥이가 그럴리 없잖아요' 라는 반응을 합니다. 결국 엄마만 힘들다고 엄살 많은 사람을 만들고 맙니다. 과연 아이의 웃음과 여유란 놀랍습니다....

3. 아이가 7개월 쯤 되면 음... 사실 배밀이를 넘어 슬슬 기어다닐 준비까지 해야 하거늘 아이가 그렇게 움직이는 데에 크게 관심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 또한 느긋한 것이, 아이가 움직이고 싶을 때는 주위에 빼액 하면 엄마나 아빠가 달려와서 움직여 주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영악한 아이가 되어 가고 있나 하는 의심도 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뒤집기 처음 할 때는 좀 의욕이 있나 했더니, 이제 되짚기까지 되고 하니 엎드려서 배밀이나 기어가기에 큰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운동량 부족인가 싶기도 합니다 (...)

덕분에 아이의 하루는 거의 탐구생활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장난감을 잡고 물고 빨고 등등 이렇게 하루가 적당히 가는 것이죠. 매일 비슷한 장난감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갈 수록 가지고 노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가끔 새로운 장난감이 오면 음...일단 탐색과 적응 기간을 좀 거치고 나면 나름대로의 놀이 방법을 찾아내서 잘 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종일 앉아 놀면 활동량과 이동량 측면에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덕분에 집에 있는 '탈것'의 역할이 조금은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보행기는 아직 조금 이른 시기 같기도 한데, 처음 탈 때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엄마아빠가 끌어주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자기가 밀어야 한다는 현실을 회피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보행기 타자마자 발을 땅에 딛는게 아니라 바퀴 레일 위로 쓱 올리고 '자 이제 움직여 보아라' 하는 걸 보면 난감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요즘은 기분에 따라서는 조금씩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가기도 하는데, 아직 이동이라 하기엔 갈 길이 멉니다.

그래서 새로운 탈것, 점퍼루를 몇 개월 대여로 집에 들여왔습니다. 아이들이 걷고 하기 전에 참 즐겁게 탈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걸 거실에 깔아놓으니 또 집이 한층 좁아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처음 태우니 점프보다는 달려 있는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일단 장난감을 조심스럽게 요리조리 살피고, 그 다음은 씹고 뜯고 눌러보고 맛보면서 해치지 않음을 확인하는 모습입니다.

점프를 하는 데는 며칠이 더 필요했는데, 그나마도 아직 기어가지도 못하는 아이라 약간 흔들흔들 정도긴 합니다. 하지만 옆에서 흔들어주지 않고도 이렇게 흔들 수 있었던 계기는, 위에 매달려 있던 금붕어로 착각할 뻔했던 앵무새의 사냥(?)에 성공한 덕분입니다.


4. 이 아이는 언제 배밀이하고 기어가고 해서 혼자 움직이나...하면서 기대 약간 걱정 가득(...)으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의 움직임이란 건 참으로 의외의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앉아 있다가 뭔가 관심이 있는 게 생기면 이제 엉덩이를 밀고 끌고 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매트 중간쯤 앉아있다고 생각한 아이가 어느 새 매트 끝에 와 있고, 등 뒤에 코끼리 라텍스 매트를 깔아놓았더니 어느새 그 매트와는 거실 맞은편에서 마주보고 있다든지 하는 일도 이제는 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짜증은 줄었지만 슬슬 장난이 늘어갑니다.

아내는 어느 날 문화센터에서 같이 수업듣는 어머니께, '이 아이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네요. 움직이기 시작하면 장난 아니겠어요. 하지만 이 순둥이가 그럴리 없겠죠 호호호...'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데 음...알고 있지만 현실도피 하다가 급습을 받은 느낌입니다. 정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떤 것을 상상하더라도 그 이상을 해낼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이 눈에 장난꾸러기 기질이 그득한 건 저희가 참 잘 알고 있죠. 집 안에서는 마냥 순둥이만은 아니니까요 허허허...

예전부터 이 아이의 취미는 아빠한테 안겨서 엄마 보기(...)였고, 지금은 아빠 엄마 품에 안겨서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슬슬 집안을 접수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위를 보면서 기어다닐 수 있게 되면 씹고 뜯고 맛볼 만한 엄마 아빠의 아이템들을 스캔하는 듯한 눈빛이 참으로 반짝반짝합니다. 그리고 당장 안겨 다니면서도 바로 저지를 수 있는 목표로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장보기 목록 메모 포스트잇과 엄마 책상 옆에 달린 모빌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얘들은 보기만 하면 바로 손이 쭈욱 나가고, 메모 정도는 움켜쥐어 떼서 바닥으로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아마 그 다음은 엄마의 화장대가 아닌가 싶어 불안함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5. 그래도 저희 아이는 다른 사연들을 보다 보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순둥순둥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먹을 것을 크게 가리는 것도 아니고, 엄마아빠 중 엄마만 집중적으로 찾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서도 엄마아빠가 있으면 큰 불안감 없이 잘 웃고 잘 지내고, 새로운 문물에도 딱히 거부감 없이 잘 지내는 거 보면 말이죠. 그리고 이런 순둥순둥함(?)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초반에 쓴 육아휴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육아휴직의 가장 큰 공로라면 아이를 보는 아내의 평정심 유지겠고, 이게 아이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평화가 제일이라는 것은 이런 데서도 맞는 말 같습니다.

흔히 애착형성이라 하는데, 이건 정말 시간과 정성을 쌓아 올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빠들이 일찍 출근해서 늦게 들어오면 아이 자는 모습을 간신히 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이 때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면 가족의 애착형성이 조금씩 깨져 나가는 거겠죠. 당장 저도 4박 출장 다녀와서 아이를 마주봤더니, 저도 아이가 어느새 쑥 큰 느낌이 들어 낮설고, 아이도 며칠만에 보는 아빠가 낮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4박 만으로도 이렇게 관계가 롤백될 수가 있구나...싶긴 했습니다. 뭐 다음날 아침쯤 되니 여느 때처럼 돌아왔지만 말이죠. 

이렇게 집 안에서는 엄마아빠의 기력과 멘탈을 자양분삼아 쑥쑥 크는 이 아이는, 어느 새 밖에서는 세상에 이런 아이가 없을 거 같은 귀요미 순둥이 인기많은 꼬꼬마의 이미지를 훌륭히 쌓아 가고 있었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지만 안 새는 경우도 생기나 싶기도 합니다. 뭐 그래도, 밖에서는 종종 엄마 아빠를 엄살쟁이로 만드는 아이라도, 이게 어딘가 싶기도 합니다. 작은 바램이라면 집 안에서도 저런 대인배의 풍모를 좀 더 보여서 가정의 평화를 좀 더 공고히 했으면 좋겠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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